민두재


마취통증의학과 임상과장

사단법인 한국카나비노이드 협회 회장

범부처 의료기기 전문평가위원

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마취통증의학

마취통증의학은 흔히 "환자를 재우는 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수술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사람의 생리를 통째로 관리하는 학문이다. 의식을 없애는 것은 시작일 뿐이고, 그 순간부터 환자의 호흡, 순환, 체온, 통증 반응은 전부 마취과 의사의 손에 넘어오게 됩니다. 외과의가 병소를 다루는 동안 마취과 의사는 그 환자가 수술대 위에서 살아 있도록 지키는 사람인 것입니다.마취통증의학의 뼈대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마취로, 전신마취와 부위마취로 나뉘며 환자의 나이, 기저질환, 수술 종류에 맞춰 술전에 설계하여 수술의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학문이다. 그중 심장이나 폐를 여는 수술처럼 순환이 잠시 멈추는 상황을 다루는 심폐마취는 그중에서도 가장 정교한 판단을 요구하는 마취의 꽃이라 하겠다. 둘째는 중환자의학으로, 수술실 밖에서도 인공호흡기와 승압제로 생명을 유지하는 기술은 본질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유지하는 마취의학의 연장이라 하겠다. 셋째는 통증의학이다. 급성 수술 후 통증부터 질환에 의한 만성통증, 암성통증까지, 통증을 하나의 질병으로 보고 치료하는 학문이다. 넷째는 진정 또는 진정마취로, 내시경이나 영상검사처럼 수술이 아닌 시술상황에서 환자의 불안과 고통을 줄여주어 최선에 결과를 유도하는 학문이라 하겠다.이 중 최근 가장 빠르게 수요가 넓어진 곳이 통증의학이다. 부위마취와 경막외 진통요법에서 기인하여 지금은 C-arm 및 초음파 가이드하에 다양한 신경과 조직에 맞춤형으로 적용되고 있다. 최근 고령층이 증가함에 따라 통증치료를 요구되는 환자수가 매년 증가되고 있는 상황이다.마취통증의학은 생명을 다루는 학문으로 의료전반에 걸쳐 환자의 삶의 질을 다룬다. 수술중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며, 환자가 아플 때 그 고통을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덜어주는 것. 이 두 가지 책임 위에 서 있는 학문이 바로 마취통증의학이다.

의료대마

저는 마취통증의학을 전공한 임상의로서 의료대마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출발점은 대마 자체가 아니라 통증이었습니다. 암성통증과 만성통증 환자를 오래 진료하면서, 오피오이드가 가진 한계인 내성, 의존, 그리고 제도권 밖으로 흘러나가는 오남용을 매일 마주해야 했습니다. 미국의 오피오이드 위기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역시 마약류 범죄와 불법 유통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저는 카나비노이드가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성통증과 암성통증에서 오피오이드 사용량을 줄이고, 그만큼 중독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제가 이해하는 의료대마학은 대마를 "허용할 것인가"를 다투는 학문이 아닙니다. 내인성 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이라는 생리학적 실체 위에서, THC·CBD를 비롯한 카나비노이드가 어떤 수용체에 작용하고, 어떤 적응증에 어느 정도의 근거를 가지며, 어떤 용량과 제형에서 안전한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임상약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난치성 뇌전증에서의 에피디올렉스처럼 근거가 확립된 영역이 있고, 신경병증성 통증·항암 보조요법·PTSD처럼 근거가 축적되고 있는 영역이 있으며, 아직 기대에 머무는 영역도 있습니다. 이 셋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말하는 순간,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과학을 떠나게 됩니다.우리나라는 2018년 마약류관리법 개정으로 의료용 대마의 문을 열었지만, 실제 환자가 접근할 수 있는 것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한 소수의 수입 의약품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미국은 연방 차원의 재분류를 진행했고, 일본은 75년 만에 대마초 관리법을 개정해 의료용 카나비노이드를 제도 안으로 들여왔으며, 독일·캐나다·호주·태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와 UN의 재분류 권고 이후 흐름은 분명합니다. 저는 지금이 우리 의료대마 정책의 변곡점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변곡점에서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준비입니다. 처방할 의사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지, 약사가 무엇을 조제할지, 규제 당국이 무엇을 기준으로 승인할지에 대한 공통의 언어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의료대마학』 교재를 기획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비마취과 의료진을 위한 진정마취 교재를 쓰면서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현실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의료 행위를 부정하는 것보다, 그것을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지식을 표준화해 나누는 편이 환자에게 훨씬 이롭다는 것입니다. 의료대마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자들은 이미 해외 처방, 자가치료용 수입, 때로는 법적 회색지대에서 대마 성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방치하거나 범죄자로 취급하는 대신, 의료인이 근거에 기반해 판단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저의 입장은 단순합니다. 의료대마는 만능 치료제도, 위험한 마약도 아닙니다. 근거가 있는 곳에서는 적극적으로 쓰고, 근거가 부족한 곳에서는 연구하며, 오남용의 위험은 교육과 관리로 통제해야 합니다. 의료대마학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해내기 위한 학문이며, 저는 그 토대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